






‘이태원 사고의 본질’은 문재앙 시대의 부동산 문제(영끌문제), 전세사기, 지역주택사기 등 사회의 다방면에 걸쳐서 만드는 ‘法治’를 무력화시키는 ‘호구 만들기’와 연결된다.
조국-추미애-윤미향-이재명의 갑질권리는 민주화체제가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개벽신앙’질서로 포접제의 ‘교주-포주-접주’의 담합이되 국민을 속이는 이면에서 하는 정치로 나타난다는 이야기다.
이태원 사고의 본질은 어쨌든 촛불 시위 막느라 인력이 부족함과는 별개로, 상황실이 4시간동안 국민의 요청을 씹은 원인이 지배한다. 물론, 경찰도 할 말이 있다. 역대 헬로윈 사건에서 올해보다 월등히 더 많은 참여자가 온 날도 있었다. 그 경우를 전제해서 출동을 씹었다.
촛불 세력은 ‘이재명’만이 강증산 상제신이라는 이름하에, 윤석열이 답답한 현실의 부족한 군주니, 체제전복을 하자는 프레임으로 빌드 업을 하고 있다.
❶ 억울하지?(무당신앙 원한의식) → ❷ 뭔가 삭히어야 하지 않겠나? (뭔가 달라. 진상규명하자 등)→ ❸ 이재명을 세우고 윤석열을 끌어내려야 복수 성공.
이런 회로를 돌린다. 모든 메시지는 윤석열이 강증산이 아니다! (강증산 만이 정부이고 국가다!는 전제조건)는 상징으로, 강증산이 없었다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오세훈 서울시는 이태원 사고의 사망자들을 줄세워서 ‘돈’으로 보상하려 한다. 역시, 뻔해보이는 회로다.
❶ 마음 후련해질 정도로 보답할 꺼에요. → ❷ 잊혀지시죠? → ❸ 그러니 이제 일상을 살아가세요.
조선시대 양반들이 자신과 연결된 희생자에 백성 달래는 방식을 취하면서, 자동으로 깨진 게 있다.
법 앞의 평등이란 공정과 상식이다.
이런 식의 우발적 사태에 보상을 한다면, 모든 교통사고 피해자들도 똑같이 주장할 수 있는게 원칙적이다.
이태원 사고의 본질은 法이 기능안하고 ‘도덕’이 없이 물량중심의 물질적 이익의 극대화로 사고하는 한국정치의 관행의 문제다. 오늘자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얼마간의 물량을 위해서, 중국인권을 눈감은 사례는 이태원 사고와 붕어빵처럼 이면이 닮아 있다.
역대 헬로윈 참가에서 어마어마한 인원이 있었어도 사고가 안 났는데, 그 관행을 믿은 경찰은 억울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관행을 심어준 ‘천도교 경제학’에 있다.
자유방임은 규범이 없는 진공상태의 허공을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천도교 경제학의 무위이화 교리와 자유주의 국가의 법치를 연결하는 고리의 연결이 안 맞는 부분이 나타난다.
민주당 김진표 국회의장은 호남좌파 씨족의리론을 구사한다.
조갑제기자는 작심하고 영남씨족 의리론을 구사한다.
한국의 정치귀족들은 유교족보학 중심으로 귀족에 백성들을 줄세우는 관행으로 복귀를 선호한다.
영남 우파 할아버지들의 ‘닭대가리짓’으로 용공세력은 정통파가 가능한데, 우파는 ‘정통파’가 불가능한 것인데도 우긴다. 좌파는 중공-소련 등 한 부족의 권력독점을 지향한다. 우파는 법과 규범의 지배다. 그런데, 정말 없었던 것은, 영남 개벽파 할아버지들이 법질서 수호를 확실히 포기해서 빚어지는 일이다.
조상신을 만나는게 서양질서와도 만난다는 개벽신앙 접신체험은, 현실적으로는 법 앞의 평등을 주장하는 일반국민을 ‘호구’ 취급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개벽신앙 신자들의 신앙체험을 서양철학 인식론으로 바꾸어 적어보면, 이것은 빼박질서로 나타난다.
문재앙시대에는 고려연방제를 위해서 문재앙이 天主이고, 문재앙을 섬기고, 곧 자기가 문재앙이다. 이런 관점으로 문빠들이 부채들고 부동산을 안았다. 이 과정에서 문빠 집주인과 문빠중개사간의, 이번 이태원 사고에서 ‘경찰’과 ‘지역상가’의 결합같은 일이 있었다. 헬로윈 참여자는 이태원상권을 불태워줄 ‘호구’일 뿐이었고, 영끌 매수자도 호구였을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PF 대출만큼 모럴 헤저드가 끼인 곳이 없다. 나중에 사고가 터지면 정부가 막아준다는 전제로, 눈먼 돈 끌어쓰는 입장이었다.
이제, 금리가 상승하여 자산버블이 터지면, 저축은행과 증권사 등의 PF채권은 대거 부실채권으로 나타나고, 부도가 나는 업체도 많을 것이다. 보험업의 경우에서 ‘연금저축’ 등의 경우에서 노령층에 생계비에 해당하는 것까지, 부도 사태에서도 멸실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돌아가는 꼬락서니 보면, 어지간한 ‘부도’는 전부 세금쳐발라서 막지 않을까?
왜냐하면, 정치권에 돈을 댈 수 있는 쪽은 가깝고, 일반국민 유권자는 호구로 멀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 문제와 지금의 문제는 본질이 같다.
박정희 광장, 이승만 광장 운운하는 분들은 영남 조상신을 2개로 제한하여 잘 빨아대면, 자유민주주의까지 된다고 본다.
그리고 좌파는 빨치산 조상신을 잘 모시면, 자유민주주의까지 된다고 본다.
그러나, 사실은 민족신앙이라 불리는 중국적 사고와, 법 앞의 평등의 질서는 안 맞다.
특히, 문재앙의 평화경제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고려연방제 세력간의 大同인데, 한미동맹파를 호구로 보는 것이며 한미동맹파의 희생을 전제한다.
용산 경찰서와 이태원상가간의 담합으로 그들끼리의 ‘대동세상’을 전제한 판단이 있는데, 이 사고안에 서양법적 인권관이 없는게 맞다.
정말 없는 것은 ‘서양법적 규칙과 규범’이 맞다고 국민을 수렴하게 하는 문화다.
원래, 부채의 증가는 신용의 팽창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가계부채, 정부부채의 증가는 ‘호구의 팽창’일 뿐이었다. ‘기업부채’에서 좀비기업의 땅투기 부분에 한에서도 ‘호구의 팽창’이 맞다. 정부돈을 써서 일반국민에 전가하는 것을 호구처럼 바라본다. 이태원 압사 희생자처럼 바라본다. 문재앙 정권 가격 떡상때 가격인상이 불의하게 전가될 일반인처럼 본다. 씨족 연고가 멀어지면 ‘호구’이자 씌울 대상이 된다.
pf 부채는 상당부분은 거품으로 부실로 허공에 날라갈 것이다. 그것을 부도를 시키게 되면, 실업사태가 발생한다. 그것을 감수하며 정부의 구조조정까지 불가피함으로 가지 않고, 일반국민에게 전가하면서(헬로윈 참여 젊은층을 보듯이) 호구에게 전가하는 것은, 일반국민에게 문재앙 정권의 압사느낌 체험과 반대편으로 그런 체험을 선물한다.
문재앙이 ‘평화경제’라고 논하는 ‘평화’의 대부분은 남로당파 부족주의로 밖에 안 보인다. 정치귀족들이란 것들이 하나같이 부족주의로 되돌아가버리고, 일반국민들에 법 앞의 평등의 주장은 설땅을 없애 버린다.
중국공산당은 시장가치 판단에서 완전히 벗어난 독재적 가치로 돌아섰다. 시장에 남아있으려면 법앞의 평등이란 가치를 유지해야 한다. 여기에서 좌파는커녕, 영남에서 국민의 힘 지지층이었던 노인들의 생각부터 고쳐야 한다. 조상신 안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없다. 법치주의가 없다.
조선왕조 사대부들은 삼정문란 사태에서 나타나듯이, 거침없이 백성을 호구로 생각하여 ‘비용 전가’의 황제였다. 조선왕조로 희구하는 모든 질서 안에서 일반국민은 ‘호구’가 된다. 누가 호구를 기쁘게 생각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