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조실록』 1594년 12월 27일
"우리 나라 습속은 남의 나라의 기예를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고 더러는 도리어 비굴하게 여긴다. 왜인의 검술은 대적할 자가 없다. 전일 항왜(降倭) 다수가 나왔을 때 그 중에 검술이 극히 묘한 자가 많이 있었으므로 적합한 자를 뽑아 장수로 정하여 교습시키도록 별도로 한 대열을 만들라고 전교를 하기도 하고 친교를 하기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끝내 실시하지 않고 그 항왜들을 모두 흩어 보냈다. 원수의 왜적이 아직 물러가지 않고 있는데 시속의 습관이 이와 같으니 가탄할 일이다. 지금 이판(吏判)이 도감에 있으니 족히 그 일을 할 만하다. 별도로 한 장수를 뽑고 아이들 약간 명을 선택하여 한 대열을 만들어서 왜인의 검술을 익히되 주야로 권장하여 그 묘법을 완전히 터득한다면, 이는 적국의 기예가 바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인데, 어찌 유익하지 않겠는가? 훈련 도감에 이르라."
왜적은 실로 상대하기가 어려우니 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왜적은 철환(鐵丸)을 비 오듯 퍼붓는데 한번 맞기만 하면 곧바로 쓰러지고 근접해서는 칼을 사용하는데 그 검술이 지극히 기이하니 이들은 참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라고 하겠다.
『포저집』
정조실록 24권, 정조 11년 9월 30일 갑오 1번째기사
1787년 청 건륭(乾隆) 52년
삼남 암행 어사 김이성이 창원 부사 이동식 등이 법을 어긴 정상을 보고하다
"동래 사람들의 말대로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개 왜국의 법은 아래에서 위의 영을 따르는 것이 아들이 아버지 일에 좇는 것과 같이하여 나아가는 것은 있으나 물러가는 것은 없고 죽음을 돌아갈 곳으로 가는 것처럼 가볍게 여기므로, 일이 있으면 곧바로 앞에 서서 향하는 곳에는 대적할 이가 없습니다."
세종실록 103권, 세종 26년 1월 20일 경오 3번째기사
1444년 명 정통(正統) 9년
명나라에서 명을 침범한 왜구를 잡아오라 칙지를 내리기 전에 잡아온 왜구를 사유를 갖추어 보내는 것의 가부를 논의하다
"왜노(倭奴)들은 삶을 잊고 죽음을 가볍게 여기니, 만일에 명나라로 잡아 보내오면 반드시 원한을 쌓아 후일에 변고가 될까 심히 두렵습니다."
세조실록 6권, 세조 3년 2월 25일 기미 3번째기사
1457년 명 천순(天順) 1년
정인지 등이 양계와 각 지역 연변의 방비 등에 대한 일을 아뢰니 따르다
"신(臣) 등은 생각하기를, 왜놈[倭奴]은 표독하고 날래며 죽음을 가벼이 여겨 단병(短兵)222) 을 잘 사용하므로, 만약 틈을 타서 언덕에 올라 시퍼런 칼로써 서로 접전(接戰)한다면 우리가 이기지 못할 것은 십상팔구(十常八九)이니, 전조(前朝)223) 의 말기를 거울삼을 수가 있겠습니다."
성종실록 46권, 성종 5년 8월 16일 무술 3번째기사
1474년 명 성화(成化) 10년
신숙주를 인견하고, 흥양 해적과 의경왕 추봉, 이효지·조진의 문제를 의논하다
"왜인(倭人)은 성질이 조급(躁急)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갇힌 자가 혹시 자살할까 염려되니, 청컨대 소재관(所在官)으로 하여금 보호하면서 시찰하여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고, 역마(驛馬)로 서울로 송치하여 정실(情實)을 심문하는 것이 편의하겠습니다."
중종실록 88권, 중종 33년 8월 19일 기미 2번째기사
1538년 명 가정(嘉靖) 17년
남쪽 오랑캐와 북쪽 오랑캐를 동일하게 대우할 것을 정원에 전교하다
"남쪽 왜인의 성품은 죽음을 가볍게 여기기 때문에 조금만 뜻에 차지 않으면 문득 분노를 일으킨다. 그런 까닭에 내가 후대하는 것이 옳다고 한 것이다."
명종실록 17권, 명종 9년 7월 18일 병진 2번째기사
1554년 명 가정(嘉靖) 33년
중국인과 왜인의 처치에는 권도를 써서 조치할 것을 헌부가 아뢰다
"그러니 이번의 자문(咨文)에 ‘왜인들은 성질이 말할 수 없이 경솔하고 조급하여 제 손으로 제 목을 찔러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수가 거의 50명이나 되어 도중에 반드시 예측하지 못할 화가 있을까 싶기 때문에 아울러 압송(押送)하지 못하고, 이미 본국(本國)에서 처결했다.’고 한다면, 비록 왜인들을 보내지 않더라도 할 말이 없을까 염려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조실록 38권, 선조 26년 5월 23일 병자 4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경략의 병부에 보낸 자문
"왜노의 본성은 전쟁을 좋아하고 죽음을 가벼이 여기며 남에게 굴복하는 것을 수치로 여겨 매양 흉독을 부리고 있습니다."
조선왕조 내내 수백년동안 일본에 대한 똑같은 얘기가 반복됨
일본인은 호전적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남에게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고..
이게 일본 사람들의 dna에 각인된 종특이고 정체성이라고 보면 됨..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전세계 패권 다툼에 뛰어들었던 국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