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7월(월드컵 직후) 발생한 이영표 폭행 사건
부천이 당시 안양에 뒤지고 있던 상황이었고, 이영표가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이임생은 감정이 격해졌는지 이영표의 머리를 한 차례 쥐어박았다.
어이가 없었던 이영표가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다가 멈춰 서서 쳐다보자, 이임생은 다시 한 번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후 경기 막판 역습 상황에서 이영표가 다시 돌파를 시도했고, 이임생이 태클로 막는 과정에서 다시 충돌이 발생했다. 

그리고 나서 결국 뺨을 때리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심판은 이임생을 퇴장시키기는커녕 경고조차 주지 않았다. 오히려 이영표를 불러 사과를 하게 했다.

맞은 사람이 사과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당시 해설의 멘트는 더욱 황당했다.

“이영표 선수, 새카만 후배가 저러면 안 되죠.”

 



당시 이영표는 2002년 월드컵 4강 이후 기량이 급상승했으며, 히딩크호의 압박 축구에서 배운 대로 적극적이고 강렬한 플레이를 펼쳤다. 실제로 유럽의 중상위권 리그 이상에서는 매 경기가 강도가 높고 템포도 빠르다. 

이때 이임생은 부상에서 복귀한지 얼마 안된터라 이영표의 적극적인 플레이에 "야. 나 부상복귀한거 얼마 안지났어. 좀 살살하자."라고 부탁을 했다는데 이영표가 계속 적극적으로 이임생을 상대하다보니 결국 화가 나서 때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프로 선수들끼리 정규 시즌 경기에서 애초에 저런 부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 경기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영표가 히딩크호에서 선진 축구를 배우고 이를 경기에서 선보였다면, 다른 K리그 선수들도 이를 따라 하려는 노력을 통해 리그 전체의 수준이 향상됐을 것이다. 그러나 꼰대 문화와 시기심으로 인해 그러지 못했고, 한국 축구는 오히려 퇴보하게 되었다.

거스 히딩크가 K리그 경기를 처음 본 소감은 다음과 같았다. “축구는 뛰어야 하는데 한국 선수들은 걸어 다닌다.” 이후 히딩크는 모든 선수 선발 청탁을 거부하고, 오직 기량과 실력에 따라 투명하게 선수를 선발했다. 이후 한국 선수들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었다.

국내 심판의 수준도 충격적이다. 이임생이 이영표를 세 차례나 폭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옐로카드 한 장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판이 적절한 경고나 퇴장을 부여했다면 상황은 더 빨리 정리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