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니스 베르캄프의 그 유명한 ‘퍼스트 터치’는 천재적인 재능 위에 지독한 개인 연습이 더해진 결과물이다. 그는 단순히 공을 잘 차는 선수를 넘어, 공의 궤적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완벽주의자’였다.
그의 기술을 완성한 핵심 요소는 크게 세 가지이다.
(1) 재능(공간에 대한 입체적 감각): 베르캄프는 경기장 전체를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야와 공간 지각 능력을 타고났다. 공이 오기 전 이미 수비수의 위치와 공이 튈 방향을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체스 선수' 같은 뇌를 가졌다고 평가받는다.
(2) 연습(벽을 상대로 한 무한 반복): 어린 시절 아약스 유스 팀에서 활동할 때, 그는 매일같이 벽을 향해 공을 차고 리바운드되는 공을 잡아내는 연습을 수천 번씩 반복했다. 그는 "공이 벽에 맞고 튀어 나올 때마다 그 각도와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완벽하게 컨트롤하려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이 연습이 훗날 어떤 상황에서도 공을 발 앞에 죽여놓는(Dead ball) 기술의 밑바탕이 되었다.
(3) 완벽주의(기술에 대한 집착): 그는 훈련이 끝난 뒤에도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터치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아스널 시절 동료들은 “베르캄프가 훈련장에서 공을 트래핑하는 모습만 봐도 돈을 내야 할 정도로 예술적이었다”고 극찬했을 만큼, 그의 기술은 철저한 자기 통제와 반복 훈련의 산물이었다. 결국 그의 터치는 “천재가 미친 듯한 연습까지 더했을 때” 도달할 수 있는 정점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베르캄프는 훈련 중 보여주는 사소한 터치 하나하나조차 너무 아름다워 동료들이 훈련을 멈추고 넋을 잃은 채 바라볼 정도였다고 한다. 아스널의 전설적인 수비수 마틴 키언은 베르캄프의 터치에 대해 “마치 눈이 내릴 때 그 눈송이를 발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히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 세 번의 완벽한 터치로 조국 네덜란드를 구한 베르캄프
1998년 7월 4일,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8강전이 펼쳐졌다. 미리 보는 결승전이라 불릴 정도로 스타 군단이 총출동한 빅매치였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16강전에서 라이벌 잉글랜드와 4골을 주고 받는 치열한 접전 끝에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승리하고 올라왔기에 기세가 등등했다.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는 모두 전반 초반 골을 넣는 공격축구를 선보이며 경기가 박진감 있게 진행되었다.
전반 12분경 로날트 더 부르가 오른쪽 측면에서 올려준 크로스를 데니스 베르캄프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뛰어올라 머리로 떨어뜨려 주었다. 이 정교한 헤더 패스를 골문으로 쇄도하던 파트리크 클라위베르트가 침착하게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선제 득점을 올렸다.
하지만 아르헨티나가 곧바로 반격하였다. 전반 17분경, 중원에서 공을 잡은 '마법사'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이 수비 뒷공간을 완전히 허무는 정교한 스루패스를 찔러주었다. 패스를 받은 클라우디오 로페스가 네덜란드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고 골키퍼 에드윈 판 데르 사르와 1대1 상황을 맞이했고, 가랑이 사이로 빠지는 침착한 왼발 슈팅으로 동점골을 기록했다.
이후 후반 막판까지 득점 없이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모두가 연장전을 예상하고 있던 그때, 데니스 베르캄프의 터치가 빛을 발했다.
후반 44분경 프랑크 더 부르가 후방에서 길게 찔러준 50야드(약 46m) 롱패스를 베르캄프가 오른발 외곽으로 완벽하게 받아내 공을 세웠다 (첫 번째 터치). 이후 수비수 로베르토 아얄라를 가볍게 제친 뒤(두 번째 터치), 각도가 없는 상황에서 오른발 아웃사이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세 번째 터치).
이 골로 네덜란드는 아르헨티나에 2:1 승리를 거두며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 역전골은 지금까지도 월드컵 최고의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

<아르헨티나를 꺾고 4강에 진출한 뒤, 간판 공격수 파트리크 클라위베르트와 기뻐하는 거스 히딩크 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