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이후 한국 정치에서 유행한 ‘중용’을 끼고 돌며 민주연합(당파중심 유교) 사고를 휘두르는 엄청난 분량의 자료와 그 끝물의 조갑제기자 표현과, 군사독재의 충군애국의 유교적 사유의 차이는 “국풍 81”과 “국풍 2000”의 차이 뿐이지 싶다.
 
“장동혁 극우파와 종북좌파가 민주적 시스템을 경쟁적으로 파괴하고 있다!”(조갑제닷컴 오늘 게시글 제목)
 
조갑제기자에게 장동혁과 종북좌파가 양극단(외지인. 즉 영어로 far-left나 far-right로 번역 불가능한)이다. 해방공간에서 이승만과 남로당이 극단이라고 하며 했던 중도파 어법의 연장이다. 그런데, 중요한 부분을 빼먹은 게 있다.
 
“사대부의 예술 세계는 시(詩)·서(書)·예(禮)·악(樂)이 하나로 녹아든 종합 예술이며, 유교적 사유의 본질은 음악(국악 및 종묘제례악 등 각국의 제사 음악)을 통해 비로소 온전하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유교에서 음악은 단순한 오락이나 청각적 즐거움을 넘어,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도덕성을 연결하는 핵심 통로였습니다.”(구글ai)
 
민주화신화의 힘은 90년대에 나타난 70년대생에 대하여 40년대생 지식인들이, 동학사상으로 당시의 20대에 사기를 치고 지금까지 이어진 것에 있다.
 
물론, 국풍 81과 국풍 2000은 명백히 다른 행사다. 누군가에게는 두 행사는 그게 그거다. 국풍 81세계관 기준으로 국풍 2000의 비하도 지겹고, 국풍 2000의 시점에서 국풍 81 비판도 지겹다.
 
박정희의 반공은 동학신앙의 후천개벽으로, 공산주의자가 씨족에서 쫓아내야 할 논리로 나타난다. 조갑제기자는 해방공간 중도파의 중화사상으로 이승만과 남로당을 양극단으로 놓는 어법의 계승을 취한다. 여기서, 잊어서는 안되는게 있다. ‘중도’와 ‘중용’사고에서 90년대 이후의 지배언어는 당파중심의 지배언어 중심이란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지지자들에게 외지인은 1인 독재 시스템 깨뜨리는 이들.
 
조갑제 지지자들에게 외지인은 민주당 돕는 당파 권력집중 시스템 깨뜨리는 이들이다. 로마법적이며 계약적 관계가 아니라, 씨족적 관계는 씨족적으로 이승만과 남로당 사이에 섞이는 그 미세한 스탠스를 다음 세대가 노예적 계승으로 이어지는 것을 논한다.
 
대부분의 ai는 민주당 측 자료이거나 호남동학의 자료로, 중용=민주주의 정치로 본다. 보수측은 박정희 전두환 중심의 왕=대동만을 옹호하고, 비판을 못해왔다. 결론은 국풍 81에서 국풍 2000사이의 거리다. 어떤 양반 당파는 둘중 하나만 편든다. 일반인에게는 이중부정이 당연하게 다가온다.
 
명확하게 보수진영 일반인들을 극우라고 조롱하고, 특정인사들을 오랑캐로 표현하며, 자기를 소 중화주의(우주중심)로 놓는 어법이 그간 마치 합의같은 외형을 띄었던 결정적 이유는, 일반국민이 뭔 소리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양반끼리는 당파 색깔로 싸운다. 자유민주주의 수호하는 일반국민은 양비론이 맞지 싶어요. 군사독재에서 왕만이 하늘인데, 이젠 베스킨라빈스 31의 색깔 이상으로 다양한 天은 국민의 기억을 기억의 쓰레기통으로 하는 셈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