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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대학교는 1962년 3월 추진계획으로 시작된 18개 조항 중, 

제4항 한·불문화협정계획을 시작으로 1965년 12월 28일에 

외무부 제1 회의실에서 이동원 외무부 장.관과 샹바르 주한 프랑스 대사가 

한·불 문화기술협정을 체결하면서[1] 대학 설립의 첫발을 떼게 되었다.






1968년 7월 15일에 이 조약은 공포되었고[2] 

대한민국 정부와 프랑스 정부는 이 협정을 지켜나가기 위하여 한·불 혼성위원회를 만들었다. 

첫 번째 한·불 혼성위원회가 개최되기 전 1969년 1월에, 

박희범 문교부 차관이 프랑스와 영국을 방문하고 

양국 정부 당국에 각각 기술 초급대학 설립에 협력해 줄 것을 제의했는데, 

이것이 아주공업초급대학을 탄생하게 한 최초의 제의였다. 

1969년 4월 19일에, 박충훈 부총.리가 

프랑스 파리에서 3일 동안 열린 대 한국경제협의체 회의에 참석하여, 

대 프랑스회담에서 드브레 외무상과 베탕쿠트 공업 상을 만나 한국과 프랑스 간 

통상, 기술 및 문화 협력관계를 증진하고, 

프랑스의 차관을 7천만 달러에서 2억 달러로 증액함과 

함께 '프랑원조계획에 의한공과대학설립확약'을 받아냈다.






1969년 6월 16일과 17일 프랑스 파리에 열린 

1차 한·불 혼성위원회에서 양국 간 교수교환 및 

강사파견, 문화기관 설치, 상호학위 인정, 기술 및 행정요원 교환, 문화 및 기술에 필요한 자료교환, 

양국의 언어 보급, 장학금제도 설치, 과학정보의 교환 등에 관한 구체적인 안건들을 논의했다. 

이때 한·불 기술초급대학 설치문제 또한 논의되었는데, 

언어교육, 장학, 문화 및 예술교육, 문화 및 기술협력, 기타 문화 및 기술교류 등 

다섯 가지가 주요 의제였으며, 

특히 전자학과, 정밀기계학과, 발효화학과, 공업경영학과 등 4개 학과 560명을 선발한다는 사항을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기술 초급대학의 첫 번째 학교법인은 교하학원(交河學園)으로 정해졌다. 

정부는 1969년, 부천산업주식회사의 사장인 김의준 씨를 이사장으로 하는 학교법인 교하학원의 설립을 인가했다. 

이때 장차 세워질 학교의 명칭을 서양(프랑스)과 교류하여 설립한 대학이라는 의미로 

'서교공과대학(西交工科大學)'으로 정하기도 했다. 

기술 초급대학의 설립을 인가받은 김의준 교하학원 이사장에겐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가 있었다. 

기존 초급대학들이 도태되어 가는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새롭게 초급대학을 설립해 

과연 건실한 대학 운영을 기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4년제 대학으로의 전환을 꾸준히 제안했지만, 번번이 프랑스 정부로부터 거절당했다. 

프랑스의 고등교육 단기과정에는 2~3년에 준비하는 BTS와 DUT 2, 그리고 각종 전문학교들이 있었고 

한국과 체결한 기술초급대학의 논의는 2년제 단기과정이었다. 

그 당시 프랑스는 우리나라의 공업초급대학에 해당하는 

IUT(Institut Universitaire de Technologie) 제도를 만들어(1967년) 

생나제르 시, 낭뜨 시, 낭씨 시 등 3개 도시에 이 IUT를 설치하고 

이 새로운 학제의 정착을 위해 큰 노력을 쏟고 있었으며 

우리나라에 설립하는 한·불 기술초급대학도 IUT를 모델로 했다. 

그래서 한국 정부도 교하학원의 4년제 대학 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김의준 이사장이 교하학원을 이끌며 아주공업초급대학 설립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끝내 프랑스 정부의 동의를 얻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집념은 훗날 2년제 대학인 아주공업초급대학이 

4년제 아주 공과대학으로 전환되는 데 큰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3]








* 프랑스가 초급대학을 고집한 것에 대해 한국에서는 불만이 많았다. 

우리는 MIT 같은 고급 학문기관을 원하는데 

프랑스는 중간급 엔지니어를 공급하는 학교를 세워주겠다고 하니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당시 한국의 수준을 보아 초급대학 수준의 엔지니어가 산업에 더 필요하다고 본 것 같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프랑스가 생각하는 초급대학과 한국이 생각하는 초급대학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산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실무적인 엔지니어를 빠른시간에 집중적으로 양성하는 것이 초급대학이었는데, 

한국은 4년제 대학에 떨어진 수준의 학생들의 학교로 인식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프랑스의 주장을 받아들여 초급대학으로 개교를 하고 보니 

예상외로 수준높은 커리큘럼과 학업 관리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프랑스가 주도한 아주공업초급대학은 당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서도 볼 수 없는 

시설과 학업관리를 보여주었던 것이었다. 

예를 들면 한 시간의 이론 수업이 있다면 이어서 두 시간의 문제풀이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나면 시험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해당 부분을 완전히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프랑스에서 들여온 각종 첨단 실습 장비로 해당 부분을 

실제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실험수업이 장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실습 조교는 항상 미소를 지으나 냉정한 프랑스인 엔지니어들이었다. 

게다가 상대평가에 가차 없는 F학점 처리로 한 과목에서 절반이 F학점을 받는 일은 비일비재 하였다. 

이것이 프랑스 스타일인 것이다. 

학생들은 공포속에서 죽도록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개교 초기부터 아주공대 하면 떠올리는 스파르타식의 무시무시한 학습량의 전통이 세워진 것이다. 

이것이 선진국의 학교 수준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MIT 수준이 뭔지도 모르면서 MIT 를 세워달라고 요구했으니 

그 당시 프랑스의 입장에서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지 상상이 간다.











1971년 12월 

'한·불기술 초급대학 설립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었고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제2조

대학의 위치는 대한민국 경기도 수원[4]으로 하며, 

이의 설립 및 운영은 한국정부의 책임하에 사립학교 법인이 행한다.


제3조

입학시험 과목과 방법 등은 한국내 다른 기술초급 대학과 같이한다. 

그러나 입학시험에는 불어가 필수과목으로 포함된다.


제5조

정밀기계과(2학급, 학년당 정원 80명), 전자과(2학급, 학년당 정원 80명), 

발효 화학과(2학급, 학년당 정원 80명), 응용기업 경영학과(1학급, 학년당 정원 40명).


제8조

불어교육은 학생들이 교수가 불어로 하는 기계기구 용법에 관한 

해설을 해독할 수 있도록 함을 목표로 한다.


제21조

한국정부는 한국인 직원의 인건비와 학교운영비를 부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