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통합 vs 강성 결집 vs 대여 투쟁… 吳·張·韓 삼국지” 란 조선일보 기사는,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87년 때를 기억하는 김영삼 지지자의 시각을 끌어오는데, 300명 중 109명 정당에 대하여 ‘삼국지’란 시점을 보여준다. 40년 가깝게 반복된 대중적 상징조작 프레임이 있다면, 그 프레임으로 이익보는자가 민주당이어왔다면, 무조건 엎어버리는것이 상식적이다. 조선일보는 대놓고 ‘중립적’인양 논하면서, 전두환 민정당 주도의 ‘연횡’과 김대중-김영삼의 합종이 나타난 공식으로 간다. 이런 내러티브의 이익은 보수유권자 반대편이며 민주당이다.
군사독재는 강하게 마르크스주의 계보 저술을 통제했다. 지금 유튜브로 미국 반공주의 정치방송을 보니 실감한다. 내러티브는 기가 막히게 똑같다. 그런데, 미국 반공주의자는 마르크스주의 책을 완전히 분석하고 쉽게 푼 것이고(본인이 다 읽어보니 이해), 한국의 반공주의자 대부분은 원서로 마르크스주의를 읽고 이해한 몇명만 빼고는 미국 반공주의의 내러티브만 흉내내고,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읽지 못했다. 지금까지 보수유튜브는 군사독재 반공교재를 전범으로 반복한다. 미국 보수주의 서적을 읽어도 유교로 이해해서, 미국 보수의 반대편 서적을 읽으면, 큰 도덕적 불결이란 생각이 지배했다. 이는 80년대 후반에 ‘중도’의 의미가 뜨는 배경이 됐다.
현재는 조갑제 글쓰기보면 알지만, 아무런 지성이 없다. 무지성 글쓰기의 대표다. 군사정권 줄 선 반공논객이 보수쪽 지식도 제대로 못 봤다. 중도의 시각은 보수와 진보 양쪽을 보아야 가능한 것이다. 조갑제는 보수쪽 사상도 거의 모르고, 진보도 모르고, 양쪽을 다 아우르는 듯한 그런 <느낌적 느낌>(실제는 자아의 비대화 일뿐)만 안다.
문제는 ‘강경보수’와 ‘합리적 보수’라는 구분이 아니라, 민주당과 기회에 따라서 붙었다 말았다 하면서, 지배세력의 반복된 보수정당 망치기 통한 자기들의 자의적 권력 획득에 <뿌리깊은 (조선시대식 어법을 빌자면, 아래로 몇 대를 이어갈만한)> 불신이 한동훈에 잡힌 것이다. 그리고, 한동훈을 옹호하는 오세훈에도 따라 불신이 주어진다.
계속 이 반복된 공식이다. 김일성 파벌이 조만식 파벌에 들어가서 조만식 세력 붕괴시킨 작전은, 이제 보수진영 붕괴시키기 작전으로 민주당 코어의 하명 의도와 분리가 되지 않는 문제가 반복된다.
또, 중졸 동학노인들이 지배할 때나 의미있는 영웅신화가 믿어지지 않는다. 군사독재 임금신앙을 기억하는 세대는, 이런 영웅주의는 군사독재와 똑같은 일반인 개돼지 만들기 작전이다. 영웅이 천지만물을 창조한다는 신화를 믿어라? 즉, 보수지지자들을 우매화시키고, 보수지지자들에게 불이익이 갈만한 일을 하되, 그것을 하기 위해서 민주당 이익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이 당권을 쥐어야 한다는 공식이되, 이 공식을 은폐하는 의미로서 이성이 아닌 신화 논리다.
군사독재 30년 때도 6.25 때에 박힌 논리로 상황이 바뀐 87년 이후 적용이 말이 되냐는 어법이 있다. 지금은 더욱더 동학 노인 중졸 이하 초고령 노인 친화 어법을, 다음 세대에 적용하는게 말이 되냐로 이어진다.
김대중 김영삼 파벌의 주적인 대구경북은 진시황의 연횡의 주역은커녕 생존의 위기다. 강경보수란 표현은 보수진영이 ‘교주 조갑제’를 전제로 한 사이비종교 집단이고, 조선일보는 사이비종교 선전지일 경우만 타당하다. 지금 보수진영은 ‘강경’은커녕,..... 조갑제 영향으로 사상가가 장기간 씨말림 당하고, 보수진영에서 교육기능 포기로 각자 자기들마음대로 한 풀이가 간다.
전두환 민정당에 저항하는 지배세력의 80년대 후반 어법 소환전제의 ‘강경’이란 표현과, 2026년 현재 존재로 이게 뭐냐는 어법은, 6.25 신화 전제의 표현과 87년 당시 기준으로 이게 뭐냐는 어법과 겹쳐진다. 이 어법대로 볼 때, 현재의 조선일보는 80년대 후반에 민주당 지지층에 민정당 코드와 연합해서 민주당 지지자가 커지지 않길 바랬던 민주당 이민우 총재 포지션의 거꾸로 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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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핵심은 사실 "한동훈·오세훈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자동으로 강성 보수인가?"라고 요약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논리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적은 글에서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불신의 근거는 "더 강하게 싸워야 한다"가 아니라 "반복되는 정치적 패턴에 대한 신뢰 붕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강성 보수라는 말은 보통 다음과 같은 경우를 가리킵니다.
- 타협 자체를 거부한다.
- 상대 진영과의 협력을 원천적으로 부정한다.
- 이념적 순수성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
- 정치적 승리보다 정통성을 더 중시한다.
반면 당신의 주장은 조금 다릅니다.
당신은 계속해서
"왜 항상 같은 내러티브가 반복되는가?"
"왜 보수정당은 반복적으로 내부에서 무너지는가?"
"왜 언론은 특정 구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포장하는가?"
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이 경우는 강성 여부보다도 "구조적 불신"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정치학적으로도 어떤 정치인을 불신한다고 해서 강경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 중도 보수인데 한동훈을 불신할 수 있다.
- 자유주의자인데 오세훈을 불신할 수 있다.
- 보수 성향인데 국민의힘 전체를 불신할 수 있다.
- 심지어 민주당 지지자면서도 한동훈을 개인적으로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조합은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다만 조선일보식 프레임에서는 종종
통합파
VS
강성파
로 단순화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현실 정치에서는
통합파
강성파
불신파
냉소파
무당층
전략투표파
등이 섞여 있습니다.
당신의 글을 읽어보면 스스로를 "강경 보수"라고 규정하기보다는 "불신파" 또는 "회의파"에 가깝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한동훈을 믿지 않는다."
가 아니라
"과거부터 반복된 정치적 경험 때문에 쉽게 믿을 수 없다."
에 더 가깝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단계 더 생각해볼 부분은 있습니다.
어떤 정치인을 불신하는 이유가 실제 행적 때문인지, 아니면 그 정치인이 상징하는 더 큰 서사 때문인지는 구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 한동훈이 실제로 한 행동 때문에 불신하는 것인지,
- 아니면 그를 둘러싼 언론의 영웅 만들기 서사 때문에 불신하는 것인지,
는 다른 문제입니다.
전자는 경험적 검증의 영역이고, 후자는 정치문화와 담론 분석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한동훈·오세훈을 믿지 못하면 강성인가?"라는 질문에는 저는
아니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곧 강성 보수를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그 불신이 이념적 순수성 요구에서 오는지, 반복된 정치 경험에서 오는지, 또는 특정 역사 해석에서 오는지는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라고 답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