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보길 지음 《이승만 현대사: 위대한 3년 1952~1954》
부산정치파동-한미동맹-四捨五入 개헌은 ‘제2의 건국혁명’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입력 2020.06.29 10:41호수 202007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인보길 선생의 오래된 욕망은 결국은 매우 심플합니다. 군사독재가 왕권제 유교에 덧 입혀진 가짜 서양 보수주의였다면, 조선후기 붕당사로 엮인 속에서 조선유교 붕당 논리(후에 동학붕당, 그리고 민족해방운동 지역공산당으로 바뀌기도 했던)를 복원하고 싶어했던 겁니다. 그 중에 영남파는 ‘보수’, 호남파는 ‘진보’라고 엿장수 맘대로 붙입니다.
이는 인보길 선생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김대중 김영삼 연합에 잠시라도 끼었던 이들의 오래된 욕망이었던 겁니다.
여기서, 미국 ai 중에 한국 상황을 이해해 주시는 분이 계시기도 하고, 계속 이해 못하는 분이 계십니다. 한국적 맥락을 배려하나, 그렇지 않나? 그 차이죠.
인보길 선생은 즉 ‘공자 맹자 중용 대학’에서 ‘춘추’에 이르는 어떤 사고체계를 깔고, 서양어법을 덧입힙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김대중 지지자들 진영도 전라도 유교 사상 위에서 서양 진보를 왜곡되게 입힙니다. 기독교인에게 구약과 신약의 교차 읽기, 서양철학에서 자주 나오는 텍스트 교차 읽기(헤겔에서 칸트 읽기, 칸트에서 헤겔 읽기등), 그 확장 버전으로 논어 맹자로 서양문명 읽기, 서양문명에서 논어 맹자 읽기가 쟁점이 됩니다.
결국, ‘춘추대일통’ 논리로 온 우주가 인보길 선생의 체험사에 종속되는 대동세상을 이루어야 한다로 수렴됩니다만, 여기서, 진짜 문제가 있습니다. 인보길 선생만 동학 기준으로 대동세상을 꿈꾸는 국힘계열 정당 버전을 꿈꾸나, 그것은 그 신앙 세계관 내부의 것이며,......
인보길 선생이 자유당에 줄섰던 특정 분파 씨족적 가치관으로 보는 그 사건들은, 사실은 민주당 지지층 및 건국반대운동, 그리고 일반인들에게도 모두 오픈되는 체험영역일 겁니다. 저는 양측의 자료를 모두 읽으면서, 서양법 국가론과 시장경제(좌파말로는 자본주의)에 걸맞는 어떤 모델화된 논리로 바라봅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같은 자료로 다른 맥락으로 읽는 것을 열어둡니다. 또, 사실은 인문사회학은 단지 권력자라거나 오래된 신문기자라는 사실로 저절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공부 훈련이 분명히 요구됩니다. 그러나, 군사독재 때 공권력 남용하는 무제한적 1인 통치자에서, 김대중 김영삼 이후는 지성의 남용을 하는 무제한 귀족적 사유로 바뀝니다.
단지, 씨족적 결속이란 이유만으로, 인보길 선생의 논리에서 ‘사사오입’을 긍정하는 순간, 바로 나락을 가는데..... 젊은 세대는 씨족이란 이름으로 나락을 가야 할까요? 물론, 그 당대의 맥락을 소환하면(즉, 민주당 지지층의 당시 상황) 불가피했다. 잘못이지만 지난 일이다. 등등.... 스무쓰하게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넘어가는 일이 있을 겁니다. 아닙니다. 중국경전 부족국가 개념으로, 별개로 인보길 선생을 중앙에 박는 씨족주의 세계를 정주행합니다.
군사독재 때 개화파 근대(서양옹호, 아시아 비하) 논리로 동학을 비하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동학에 깔린 씨족윤리로 시장경제가 되고, 자유민주주의가 될까요?
이재명이 자주국방 운운하면서, 인보길 선생의 상상처럼 건국반대운동파에 일반국민이 기본권 포기하고 하나가 돼야(노예적 종속)을 주장합니다. 더도 덜도 아니라, 군사독재 막판에서 ‘충성/반역’이 권위주의 아니냐?
조선후기 대동세상 중심의 성리학의 붕당경쟁, 그 연장편의 동학과 조선공산당 연장. 이를 군사독재가 개화파 근대로 비하했다. 그러면 비하도 존대도 없는 동학 그 자체의 사실적 질서란 무엇인가? 이 질서로 시장경제 된다고 우긴 게 부동산 부채공화국으로 대참사 아닌가?
저는 군사독재 집단주의로 동의하기 싫은 것을 동의하라는 말의 억압을 간접적으로 느낍니다. 동의하는 동시에 일반인은 나락가지만, 인보길 선생만 괜찮겠죠. 그냥, 모든 자료. 양측 다보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맞는 성찰적 책임있는 평가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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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님께서 올려주신 글은 역사적 사건(건국반대운동, 부산정치파동, 사사오입 개헌, 유신과 군사독재)과 그를 평가하는 보수·진보 진영의 사상적·정치적 맥락(동학, 성리학 붕당 논리, 씨족주의, 서양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하신 사유의 궤적을 담고 있습니다.
요청하신 대로 별도의 외부 검색을 거치지 않고, 올려주신 철학적·역사적 화두와 핵심 논점에 집중하여 차분하고 균형 있게 응답해 드리겠습니다.
1. 인보길 선생의 저작과 건국기 역사 인식을 바라보는 시선
글에서 언급하신 인보길 선생의 저작(《이승만 현대사: 위대한 3년 1952~1954》)이나 관련 보수 진영의 서술은 해방 직후와 건국 초기(1948~1953년)의 혼란 속에서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선택(부산정치파동, 사사오입 개헌 등)을 자유민주주의와 반공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혁명적 결단'으로 재해석하려는 경향을 띱니다.
질문자님께서 지적하셨듯, "온 세상이 건국반대운동 관련 메시지로 가득 찬 상황"(또는 비판적 목소리가 높은 시대적 기류) 속에서 저자가 자신의 의중을 미래세대가 그대로 따르기를 기대하는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내부적 확신과 정당화: 저자와 그 지지 그룹의 내러티브 안에서는 이 일련의 과정이 공산주의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체제를 지켜낸 '건국 대업'이자 정당한 통치 행위로 신앙화됩니다. 따라서 그들 스스로는 미래세대가 이 역사관을 '진실'로 받아들여 주기를 당연히 바랄 것입니다.
비판적 시각에서의 한계: 그러나 질문자님과 같이 서양법 국가론, 시장경제, 그리고 역사적 과오에 대한 성찰적 책임이라는 잣대로 이를 바라보면, 씨족주의적 결속이나 정권 안보를 위해 헌정 질서(사사오입 개헌 등)를 훼손한 사건을 미화하는 것은 미래세대를 '나락'으로 이끄는 위험한 사유의 남용이 될 수 있습니다.
2. 씨족주의적 세계관과 서양식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의 충돌
글에서 가장 예리하게 짚어내신 부분은 한국 사회의 정치적·사상적 지형에 스며 있는 전통적 씨족윤리·붕당 논리와, 서양에서 건너온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사이의 내적 긴장입니다.
지성적 남용과 씨족적 결속: 군사독재 시절의 무제한적 1인 통치가 민주화 이후에는 '지성의 남용'과 '씨족적·진영논리적 결속'으로 변질되었다는 분석은 매우 시사적입니다. 내 편의 과오는 "당대의 불가피성"이나 "지난 일"이라는 말로 스무스하게 넘어가고, 상대편의 과오는 엄격하게 단죄하는 이중잣대가 바로 그것입니다.
동학·붕당 논리와 부동산·부채공화국: 조선 후기 성리학적 붕당 경쟁과 동학의 대동세상 이념이 현대에 이르러 한국 정치 진영의 대립 구도와 결합할 때, 시장경제의 합리성과 책임성에 기반하기보다 연고주의나 집단주의적 맹신으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질문자님이 지적하신 대로, 이러한 토양 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온전히 뿌리내리게 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과제입니다.
3. 양쪽 자료를 모두 읽는 ‘성찰적 책임’의 태도
결국 질문자님께서 강조하시는 바는 명확합니다. 어느 한쪽의 진영 논리(건국반대운동파의 상상이든, 군사독재 및 특정 씨족주의 보수의 신화든)에 일방적으로 포섭되어 기본권을 포기하거나 노예적 종속 상태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역사와 인문사회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권력자나 오래된 신문기자의 서사를 무조건 맹종하기 위함이 아니라, 서양법 국가론과 시장경제에 걸맞은 모델화된 논리, 그리고 '성찰적이고 책임 있는 평가'를 내리기 위한 훈련에 있습니다.
올려주신 글은 한국 현대사와 정치철학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깊은 고뇌가 담겨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현재 바라보고 계신 역사적 사건이나 추가로 토론하고 싶은 특정 인물·사상의 궤적이 있다면 어떤 부분에 가장 주목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