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동상이랑 박정희 동상이랑
김대중 동상이랑 똑같다고 지껄이는 게이가 있어서 말하는데
맥아더 동상은 1957년에 전국의 국민들이 그 어려울 때 한 푼 두푼 내서 자발적으로 만든 동상임
이미 맥아더는 1951년 한국전쟁 총사련관 해임 되고 6여년의 시간이 지났고 미국 자국내에서도 그냥 자연인 듣보잡 노병일뿐이었음
자기 입김을 뿌릴 지휘도 안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생긴 저 멀리 한국에서 자발적으로 생긴 동상임
박정희 동상은 박정희 死後 30여년만에 생긴거임 30년 동안 역사의 잔인한 평가를 받고서 역사의 한 조각으로서 생긴 동상임
어느 정치적 목적도 없이 이념도 없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일부분으로서 생긴 동상임
반면에 DJ는 어떨까?
본인이 집권 기간 동안에 대 놓고 예산 집행하고
심지어 대통령이 되기 전에 잠깐 경기도 일대에서 살았다고 그 곳까지 기념관으로 만들려고 했던게 DJ임
어떻게 같을 수가 있음? 간단하게 다루어보지 ↓
1.대표적으로 김대중 도서관
2.대표적으로 김대중 동상
3.대표적으로 김대중 컨벤션센터
4. 기타 등등도 좀 다뤄보자
김대중 컨벤션센터는 일베 게시물에 반박 댓글 달렸길래 생략 함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가 집권 기간에 집행 예산 직접 관리해주고
나중엔 광주는 낙후 되었다는 명목 하에 예산 더 집행 해줌
후에 못 이기는 척 광주 컨벤션센터에서 김대중 컨벤션센터로 개명 됨
[그런데 김대중 컨벤션센터로 개명 후에 수익이 10배 늘었다니깐.. 뭐 이건 옳은 일인 듯]
1. 김대중 도서관 [아태 재단 전신]
“이 김대중이가 노벨평화상을 받으면 상금을 국가에 내놓겠습니다.”(2000)
“노벨평화상은 한국 국민 모두의 업적으로 받은 상이니만큼 저는 상금(11억 2,222만원)을
노벨상 취지에 맞게 사용하겠습니다.”(중앙일보 2000.12.11)
“노벨 평화상 상금은 이 김대중의 것입니다.”(2001)
“노벨 평화상 상금은 아태재단에 넣어 두었다.”(2001. 12.10 조선일보)
“노벨평화 상금을 김정일에게 바치려 한다.”(2002),
“노벨 상금과 그 이자를 평양과학기술대학에 기탁할 것이다. 그들은 6.15 기념관을 지을 것이다.
” (2002.5.20 중알일보, 세계일보, 신동아 2002.6월호)
등으로 계속 번복해 온 노벨상 상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2009년 1월 16일 아태재단은 재단 해산을 결의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단에 기부했던
노벨평화상 상금 등에 대해 그 동안의 이자를 포함, 총 13억 5400만 원을 김 전 대통령에게 반환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측이 관할 마포세무서에 제출한 상속세 신고서에 따르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총재산에서 채무를 변제한 순재산 12억 6천400만 원 중 8억 원은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나머지 4억 6천400만 원은 홍일∙홍업∙홍걸씨 등 아들들에게 각각 상속되었는데,
이 여사가 상속받은 8억원은 노벨평화상 상금 총 11억 원 중
김 전 대통령측이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 기부했던 3억 원을 제외한 것으로,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잇는 사업에 활용될 예정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이것이 노벨평화상 상금 스토리의 결말이다.
*김대중 도서관 한 줄 요약
아태 재단 부실/비리 터져나오니 연세대에 일부 기부했다는 명목 하에 강압적으로 연대에 떠넘겨서 김대중 도서관이 됨
도서관이 된 이유는 김대중 본인이 평생 소장했던 책이 2만여권이 됐기 때문에 그거까지 같이 기부해서
도서관이 되었다고 함 웃긴 건 도서관의 기능을 못 함..
2. 김대중 동상
*김대중 동상 한 줄 요약
김대중 컨벤션센터와 같은 방식으로 이미 자기 홍위병들 시켜서 예산 확보하고 입 맞춰서 만듬
내 말이 억지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추가 자료 나눠줌
김대중 컨벤션센터 이 후로, 전라도 = 김대중 신 이라는 이미지가 전국으로 부정적으로 확산 되어서
그 후 추모사업에 대해서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있었음 김대중 컨벤션센터만 해도 600여명의 여론조사만으로 개명한거라서
밀실 조사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광주 컨벤션센터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게 되어서 두리뭉실하게 넘어감
그런데 정신 못 차리고 무안 공항, 김대중 공항으로 개명
김대중 동네 후광[김대중 호] 후광리를 김대중으로 개명
심지어 압해대교를 김대중 대교로 개명 등등 많은 일이 있었음[모두 지역 주민 반발로 이뤄지지 않았음]
여론조사 할 때마다 지역 주민들 반발이 나오자
김대중 컨벤션센터 이 후로 김대중 추모 사업은 절대 여론조사 안 함
모두 관할 지역구 의원 재량으로 단독적으로 이루어짐
이제 보너스
간단 명료하게 다뤄줌
1. 대중경제론 대필
2. 만주 건국대 3수해서 못 가자, 만주 건국대 갔다고 거짓말 치다가 출입기자한테 걸릴 썰
[후에 경희대 나왔다고 거짓말 치다가 한 번 더 걸림]
3. 92년 양김 대선에서 김영삼 측이
'대학 나온 자가 이제 글로벌 시대를 이끌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뉘앙스로 네거티브를 함'
결과 김대중 낙선 후 전국 전세계 돌아다니면서 명예학 박사 주으러 다님
[ 내 개인적 생각이지만, 이 때 김대중 대학 못 나와서 낙선 했나(?) 라고 생각한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