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YH8vE
한국전쟁 영웅들
https://www.ilbe.com/4684839553 천사들의 순양함 세인트폴 이야기
https://www.ilbe.com/3717454561 불암산 유격대 이야기
https://www.ilbe.com/4817283736 구월산유격대의 여장군, 이정숙 이야기
https://www.ilbe.com/3707499337 육군사관학교 비운의 기수 1기 2기 이야기
https://www.ilbe.com/5954568807 교암산 절대사수 6사단 김교수 대위 이야기
https://www.ilbe.com/6606836910 연필대신 총을 든 학생유격대 "태극단"이야기
https://www.ilbe.com/6125300364 조금은 다른 이웃 화교참전용사 이야기
https://www.ilbe.com/7448430205 불패신화 검은 피부를 가진 낯선 이방인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https://www.ilbe.com/7813625821 영예로운 죽음을 맞이한 영국군 해피밸리 전투
https://www.ilbe.com/7892073334 제 2의 조국, 한국을 지킨 윌리엄 H. 쇼 대위 이야기
https://www.ilbe.com/3497943988 한국전쟁을 함께한 미국 여기자 마거릿히긴스 이야기
https://www.ilbe.com/3669988692 낙동강전투 전략요충지 마산지구전투
https://www.ilbe.com/4899995963 진짜 민주주의를 지킨 64년 전 겨울을 기억하십니까?
반가워 일게들아
요즘 사드에 대한 중국내정간섭 떡밥으로 많이 짜증나는 게이들이 많을꺼야
그와중에 중국 달래러 간다는 국회의원들까지 출현할 정도로 대한민국 안보의식은 개판오분전 상황이지
오늘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 최초의 유격대 "백골병단"에 대해서 알아볼꺼야
백골?
백골하면
육군 3사단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3사단과 백골병단은 아무 관련 없는 이름만 비슷한 부대야
한국군이 적 후방침투와 첩보수집을 위해 창설한 부대야
적에게 부대 규모를 과장되게 속이기 위해 집단군급 "병단"을 붙였다고 해
최초?
분명 1950년대에도 유격대가 있었는데 왜 51년 창설된 백골병단이 최초?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내가 소개해준 유격대들과 다른 유격대들은
군에서 만든 부대가 아니라
민간인들이 조직하거나 낙오된 군인들이 합류해 만들어진 유격대들이기 때문이야
(그들은 군번도 계급도 없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거야)
하지만
백골병단은
1951년 1월 체력, 정신력, 애국심이 투철한 647명을 선발하여
육군정보학교에서 교육을 더 시킨 뒤에
군번과 계급을 주었던 육군본부 직할 정식부대야
(하지만 임시 군번과 계급이었음)
하지만 너무 급하게 만든 조직이라
대원들은 신병수준이었고 게릴라전에 대해서 무지했어
그래서 원래 백골병단 편성과 교육을 위해 초빙됐던 채명신장군은
백골병단 수준을 보고
회고록에서 "이런 아마추어 부대들은 실전 투입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하며
(한국전쟁 당시 지휘관들 오른쪽에서 2번째 채명신장군) ( 왼쪽 2번째 박정희도 보임)
직접 11연대장에 지원을 하게 될 정도였어
하지만 채명신장군( 당시 중령) 이 11연대장을 맡은거 외에 12,13연대는 선발인원에서 대학교나 의용경찰 출신자들로 지휘관을 뽑았다고 해...
(백골병단 이라는 이름은 11연대가 임무수행 후 돌아왔을때 채명신 중령이 3개 연대를 통합 지휘하게 되면서 명명 했다고 해)
모두가 백골이 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백골"부대는
우여곡절 끝에 교육이 끝나자마자
(북한군복을 입고 김백일 1군단장 사열을 받고 있는 11연대)
11연대가 1월 30일 실전투입을 시작으로
(정일권 참모총장, 1군단장, 수도사단장, 미 군사고문 등이 북한군복을 입은 12연대 출정식 사열을 받고 있는 모습)
12연대 13연대가 차례대로 투입됐어
그들은 북한군 무기와 장비를 들고
전장으로 향했고
그곳은
김일성 최측근이자
최룡해 애비되는
최현 중장이 이끄는 군단과
105전차여단 과 김일성이 총애해 현재 북괴 사단이름으로 남아있는
류경수 가 지휘하는 군단
2개 군단이 기다리고 있었고
강원도 북방산악지대와 혹독한 추위도 기다리고 있었어
아마추어라고 생각했던 백골병단은
게릴라를 통해서 분산된 적 소부대들을 전멸시키고
검문소를 설치해 지나가는 북한군관들을 처치하고 정보를 캐냈다고 해
획득한 정보는 곧장 아군에게 전달됐고
그 정보로 수도사단이 적들을 크게 격파하는 전과도 올리게 됐지
무엇보다 김일성이 만든 남파유격대를 조기에 식별해
수뇌부 전원 생포한거야
생포된 인원들 중에는 빨치산 총사령관 김원팔 중장이 있어서
하지만 엄청난 전과를 올린 유격대는 기뻐할 틈도 없이
생포했던 포로가 도망치면서 상황이 바껴
백골병단은 적의 추격이 있을껄로 예상했고
사로잡은 포로들은 전부 처형시켰어
얼마 후 북한군은 추격해왔고
백골병단은 혹한의 추위 속에서 60일동안 북한군과 혈투를 벌여
11연대 2대대장이었던
윤창규 대위는 부상을 입자
전우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적들에게 다가가
"야이 새끼들아! 내가 대대장이다!" 외치며
생포하려고 다가온 적들과 함께 수류탄으로 자폭했다고 해
그들은 강원북부 산악지대에서
2주치 미숫가루 식량만 들고 60일동안 320km를 이동했어
3월 30일 전선이 북상하며
더이상의 추격은 없어졌고
북진하던 국군 7사단과 조우하며
이들의 춥고 길었던 전투는 끝났어
적 고위간부 13명과 480여명의 북괴군을 사살하고 적 통신교란과 첩보수집 등
수많은 전과를 올렸어
하지만
(살아서 귀환한 11연대원들)
647명의 용사들 중에 364명은 돌아오지 못했어
하지만 그들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어
그들에겐 포상이 아닌 군번과 계급이 인정받지 못한채 백골병단 해체라는 시련이 다가왔어
전역한 사람들은 군번도 계급도 인정 못받은 미필 상태로 남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져졌고
그 뜻은 다시 입대해서 군복무를 마쳐야 한다는 미친 상황이 벌어져
채명신장군은 육본에 항의를 했지만
육본은 묵묵부답이었어
당연히 유가족들 또한 유공자로 인정 받지 못헀어
조국을 위해 지옥을 갔다온 용사들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만 흘러갔어
1980년대 말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은 힘을 모아 겨우겨우 백골병단 전적비 건립을 승인 받았어
그리고 2004년
53년 만에 국회에서
적 후방지역 작전수행 공로자에 대한 군복무인정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 통과되면서
아주 늦었지만.... 정말 미치도록 늦었지만
생존자는 계급과 군번을 인정 받을 수 있었고 유가족들은 보상을 받을 수 있었어
그리고
2010년 6월 25일
육본 대연병장에서
59년만의 전역식이 열렸어
이미 수많은 전우들은 먼저 떠나갔고

26명만이 남아 먼저 간 전우들과 함께라는 생각으로
기쁜 마음으로 한편으론 슬픔마음으로 전역하게 됐어
황의돈 육군참모총장은
백골병단 선배들께 오늘에야 전역증을 드리게 돼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늦었지만 최고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
라며 사죄했지만
조국을 위해 사지로 갔던 그들에 대한 예우는 비판 받아 마땅해
백골병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들이 누볐던 곳은
그들의 후예들이 굳건히 지키고 있어 (703특공연대)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에 가면 백골유격대 전적비가 있으니 혹시 지나갈 일 있으면 한번쯤 들려보는 것도 좋아
전쟁기념관에 가면 백골병단 소개코너도 있으니 한번쯤 보는것도 추천해
이걸 쓰면서
예전에 소개한 구월산 유격대의 여장군
이정숙 대장이 외쳤던
"우리가 이런 세상을 보려고 싸운게 아니다! 이러다가는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일게이들은 부디 잊지말고 백골병단은 물론
군번도 계급도 없이 산화한 용사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자유대한이여, 그 날의 우리를 잊지 말아다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백골병단 용사들이여...
3줄요약
1. 불굴의 군인정신으로 나라를 지켜낸 선배님들이야말로 이 땅의 진정한 영웅이며
2.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최소 희생으로 최대 승리를 거두는 것만이
3. 선배 전우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는 길임을 명심하겠습니다. -3군단장 기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