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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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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월 31일 정의의 십자군으로 파한되어 용전분투하다가 1955년 6월 15일 본국으로 개선한 군대이다.
여기 여러 나라의 국민과 후손들에게 그 뜻을 전하고자 그들이 남긴 찬란한 전력과 지휘관들의 이름을 새긴다.
-벨기에,룩셈부르크 참전비 기념약사 中-
반가워 게이들아
일게이들을 위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전쟁 영웅들의 이야기를 소개해주는 게이야
오늘은 미국-영국처럼 대국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한국과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한국의 자유를 위해 싸우러 온 베네룩스 3국 중에서도 벨기에-룩셈부르크군에 대해서 알아볼꺼야
벨기에-룩셈부르크는
프랑스 독일 사이에 있는 국가들로 네덜란드까지 합쳐 베네룩스 3국이라고도 불려
이들은 주변국들에 비해 약소국이였기에
1차대전, 2차대전 2번의 전쟁때마다 독일에게 침공을 당했어
특히 2차대전에는 나치정권에 수년간 지배를 받기도 했었지
그러기에 그들은 에티오피아처럼
아픈역사가 있기에 (참고 : https://www.ilbe.com/7448430205 )
한국전쟁은 남일이 아니였어
1950년 6월 27일
"대한민국이 무력침략을 격퇴하고, 그 지역에서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원조를 제공하여 줄 것"
이라는 내용의 83호 결의문이 채택되고
1950년 7월 벨기에-룩셈부르크 통합된 부대를 만들기로 한 이후
자원병을 받아
벨기에 1개 대대 900명 - 한국전쟁 기간동안 3498명이 참전
룩셈부르크 1개소대 44명 - 한국전쟁 기간동안 89명
벨룩스 부대마크
크레하이 중령이 이끄는 2개 국가의 병력이 혼합된 벨룩스 부대가 참전을 하게돼
아마 44명 1개소대?
작은규모에 실망할 수도 있지만
당시 인구비례로 보면 상당히 많은 병력을 보낸거야
1월 31일 부산항으로 들어온 벨룩스 부대는
2월까지 현지적응을 완료한 뒤
3월 미 3사단에 배속되어 서울탈환작전인 리퍼작전에 참가하게 돼
서울 역삼동쪽에서 작전을 했고
이후 영연방 29여단 예하 부대로 배속되어
1951년 4월 중공군의 1차 춘계대공세 당시 금굴산 전투에 참전하게 돼
영국군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서린 설마리전투가 있었던 기간이야
\
지도를 보면 금굴산이라고 적힌데 있지?
실제로는 우정리-동이리 쪽이 벨룩스부대가 있던 곳인데
남쪽으로는 임진강이 있어 자칫 잘못하면 고립될 수 있는 전선이야
하지만 중공군 춘계대공세로 그 일대가 점령 당하면 동쪽 전곡으로 철수하는 65연대가 위험해지기 때문에
벨룩스 부대는 고지사수를 해야했어
중공군 188사단이 공세를 퍼부으면서 당시 금굴산 남쪽에 있던 교량까지 점령당하면서
벨룩스부대가 위험에 빠지기도 했지만 끝까지 막아냈고
설마리 전투 상황도
맨 상단에 금굴산 적힌거 보이지?
유엔군이 안전하게 전곡으로 퇴각할 수 있었어
하지만 벨룩스 부대는 고립됐고 아군의 구출작전이 실패하자
벨룩스부대는 도암포에 있는 교량을 점령한 중공군을 돌파해서 퇴각했고
벨룩스부대는 용맹함이 인정받아 미 대통령, 미 8군사령관, 벨기에 국방장관 부대표창을 받아
1951년 10월
중공군 2차 대공세때
평강군 철원군 사이 학당리 라는 곳에 있는 388고지에서 벨룩스부대는 중공군 141사단을 만나게 돼
벨룩스 부대는 1월 파병온 병력들이 복귀하는 시점이었고 아직 본국에서 새로운 병력이 오지 않은 상태라서
900여명의 부대원중 560명만이 부대에 있었어
그들은 도착직후 중공군의 포격공격을 당해
그리고 공세가 시작됐고 한때 벨룩스부대 지휘소 지역까지 점령당했지만
그들은 용감히 싸웠고
전투가 끝난 직후 중공군은 100여명 이상의 전사자를 내고 물러 갔어
그들은 미 65연대 2대대에 진지를 인계한 후에
예비부대로 전환됐어
이후에
미 1기병사단으로 배속돼서 임진강 방어 임무를 수행하다가
다시 3사단에 배속돼서
1953년 2월 중공군 70사단과 격돌한
김화 잣골 전투에서는 4월까지 이어지는 중공군의 연대급 공세에도 끝까지 싸워 막아내는 전과를 올리기도 해
그렇게 한국을 지켜낸 벨룩스부대는 휴전 후 1955년 6월 완전 철수를 하게 돼
그들의 치열했던 흔적은 아직도 한국에 남아있는데
연천군에 남아있는 유엔군 화장장 시설이야
금굴산 전투 이후 영국군과 벨기에군이 계속해서 나오는 전사자들을 본국으로 후송하기 위해서
1952년 만든 화장시설이야
화장시설까지 만들정도로 치열했던 전쟁이였다는 증거이자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대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였어
주민들 말로는 항상 엄숙한 분위기였다고 해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고향으로 떠나기 위해 여기서 화장된 유엔군들을 생각하면 정말 뜻깊은 장소야
벨기에 -룩셈부르크에게 정말 고마운게 뭐냐면
50년 당시 벨기에 룩셈부르크 모두 전쟁으로 미국의 마셜플랜에 의한 경제적 원조로 버티고 있었던 나라들이거든
그런데도 지구반대편에 있는 한국을 위해서 그들은 들고 일어선 거야
룩셈부르크 같은 경우에는 군대도 제대로 편성돼있지 않은 국가인데도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몰랐지만 침략을 받은 국가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라는 생각으로 노동자, 농민, 사업가 등 일반 시민들이 지원했다고 해
벨기에 역시 현역, 예비역은 물론이고 2차대전 레지스탕스 출신들도 많이 자원했어
그리고 귀족출신 22명도 참전했는데 그중
벨기에 귀족가문으로 상원 외교위원장의 아들이기도 한
시몽피에르 노통브 남작은
가족들의 반대에도 19살에 장교도 아닌 병사로 자원입대 했어
웃긴게 아버지가 반대했는데 그 반대도 전쟁 참전 반대가 아니라 장교로 참전하라는 반대였어 ㅋㅋㅋ
아버지는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하지만 군인으로서 귀족 남자의 이상적인 모습은 장교지 사병이 아니야!"
라고 했었다고 해 ㅋㅋㅋ
그는 통신병으로 근무하다가 수류탄이 터져 25개의 파편이 박혀 다리를 심하게 다치기도 했지만
병원에 있으면서 한국전쟁이 왜 났는지 일제강점기는 어땠는지를 배웠다고 해
그리고 한국음식에 맛을 들여
회복 후에 다시 전선으로 갔을때는 한국군 배식줄에 서서 김치를 달라고 했데 ㅋㅋㅋㅋ(두유노우김치?)
54년 귀국 이후에
90년대에는 유럽연합 경제사회이사회 사무총장까지 지낸 인물이야
은퇴 이후에는 다시 한국으로 가 벨기에-한국 문화교류를 주도 한 인물이기도 하지
아쉽게도 그는 2012년 불행한 사고로 인해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
그가 참전 하게 영향을 준 인물은 그의 아버지 친구이자 상원의원이었고 당시 벨기에 국방장관이었던
모로 드 믈랑 의원이었는데 (사진을 못찾겠다...)
한국전쟁에서 참전을 장비지원으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막고
병력파병을 주도한 인물이야
심지어 그는 48세의 나이로 통신장교로 직접 참전했어ㅋㅋㅋ
국방부장관이 직접 소령으로 참전하는
진짜 행동하는 사람이었지 ㅋㅋ
그는 훗날 회고록에서
"벨기에도 한국처럼 열강에 둘러싸인 소국이기 때문에 같은 처지의 한국을 도와야 했다"
라는 말을 남겼어
정말 고마운 말이지
(벨룩스부대가 서울 봉은사에 임시막사를 설치했을때 인연으로 다시 찾아온 참전용사)
벨기에 3공수부대가 벨룩스부대를 이어오고 있는데
부대 건물들에는 '임진' '학당리' '잣골' 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어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벨기에 군사박물관에 갔을때야
이 대통령은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젊은이들이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귀한 생명을 바쳤다"면서
"전후 독립한 나라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다"
라며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어
이후 한국해군이 벨기에를 방문했을때
한국군-벨기에군 최초로 참전 기념행사를 열기도 했어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벨기에 참전용사 기념탑을 방문한적이 있어
벨기에 생 피에르에 있는 참전기념탑으로
기념탑 아래 동판에는
"자유로운 세상을 위하여 한국에서 쓰러진 벨기에인을 위하여"이라는 말이 적혀있어
최근 16년 사진인데 벨기에 주재 한국대사가 참여한 기념행사도 있었어
벨기에 참전협회장은
"현재 발전된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라는 말을 하기도 했지
한국전쟁을 흔히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 이라고 표현 하고 있어
벨기에 한국전쟁박물관 입구에도 "잊혀진 전쟁"이라고 적혀 있지만
출구에는 ‘더는 잊지 않는다(Forgotten No More)' 라고 적혀 있다고 해
정말 부끄럽더라
대한민국을 위해서 싸운 벨룩스 부대원들의 희생을 포함한 모든 유엔군들의 희생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한국이 오히려 잊고 있는거 같아
우리를 위해서 싸운 영웅들을 잊지 않는 국민들이 됐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글을 마칠께
"여러분들은 결국 대한민국을 지켜냈습니다. 황폐한 땅에 희망의 씨앗을 심어줬습니다"
-김양 보훈처장-
3줄요약
1. 한국전쟁은 한 국가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2. 벨기에도 한국처럼 열강에 둘러싸인 소국이기 때문에 같은 처지의 한국을 도와야 했다.
3. -모로 드 믈랑 벨기에 국방위원장 회고록 中-


